'사과형' 비만은 심장 노화 급행열차, '배 모양'은 보호막… 지방의 두 얼굴

2025.09.08. 오후 05:40
 매일같이 헬스장을 찾고 식단을 관리하며 건강에 자신하는 사람이라도 안심하긴 이르다. 꾸준한 운동과 정상 체중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내장지방'이 심장의 노화를 급격히 앞당기는 '조용한 암살자'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영국 런던의 의학연구위원회(MRC)와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공동 연구진은 유럽심장학회 공식 학술지인 '유럽심장저널(European Heart Journal)' 최신호에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무려 2만 1241명에 달하는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참여자의 전신 MRI 영상을 확보해, 인공지능(AI) 기술로 체내 지방의 정확한 양과 위치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핵심은 단순히 지방의 양을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심장과 혈관 조직의 뻣뻣함, 염증 수치 등 노화와 직결된 지표들을 종합하여 개인별 '심장 나이(heart age)'를 산출했다. 그 결과,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내장지방이 많은 사람일수록 심장 나이가 훨씬 더 많은, 즉 심장이 더 빨리 늙어가는 뚜렷한 경향성을 발견했다.

 

내장지방은 복부 깊숙한 곳에서 위, 간, 장 등 주요 장기를 둘러싸고 쌓이는 지방을 말한다. 손으로 잡히는 피하지방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마른 체형의 사람도 내장지방 수치가 높을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연구진은 혈액검사를 통해서도 내장지방이 체내 염증 수치를 높이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확인하며 그 위험성을 다시 한번 경고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지방의 분포에 따른 성별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 흥미를 끈다. 주로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복부에 지방이 집중된 '사과형(apple-shaped)' 비만은 심장 노화를 가속하는 매우 강력한 예측 인자로 작용했다.

 


반면, 놀랍게도 여성에게서 흔히 보이는 '배 모양(pear-shaped)' 지방 분포, 즉 허벅지와 엉덩이에 쌓이는 지방은 정반대의 효과를 보였다. 이러한 지방은 오히려 심장 노화를 늦추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팀은 특히 폐경 전 여성에게서 높게 나타나는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치가 이러한 보호 효과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쁜 지방'이 있는가 하면, 특정 조건에서는 '착한 지방'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연구를 이끈 딕클란 오레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가 비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체중이나 체질량지수(BMI)만으로는 심장 건강의 위험도를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 지방이 몸의 '어디에' 축적되어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복부 깊숙한 곳의 '나쁜 지방'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국심장재단(BHF)의 브라이언 윌리엄 최고과학·의학책임자 역시 "내장지방이 고혈압, 고콜레스테롤뿐만 아니라 심장 자체의 노화까지 앞당긴다는 사실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논평했다. 그는 "여성에게서 관찰된 에스트로겐의 심장 보호 효과는 향후 새로운 심혈관 질환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연구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박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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